벨기에 와플이 막 유행하기 시작했던 시기에 동네에도 와플가게가 생겼다.
길가가 아닌 시장 비슷한 골목에 자리하고 있던 가게였는데 흰머리가 많은 50대? 정도 되어 보이는 사장님이 운영하는 곳이었다.
원래는 다른 장사를 하시다가 말아먹고 와플과 간단한 음료를 파는 것으로 종목을 바꾸셨다고 했다.
와플 가게는 장사를 모르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곧 망할 것 같은 곳이었다.
일단 유동인구는 있으나 대상을 정하지 않고 가게를 연 느낌이었다.
가게 옆에는 정육점과 신발가게, 음반가게가 있었고 가게의 크기도 테이블이 5개 정도 들어가는 정도로 작았다.
그렇다면 와플이 맛있었을까?
맛이 없었다.
아니 맛이 일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사장님이 재료를 너무 심하게 아꼈다는 것이다.
와플 위에 생크림을 뿌려주려면 생크림 캔에 작은 가스를 충전해야 하는데 어느날 부터 사장님이 가스를 아끼기 시작하셨다.
"손님도 얼마 없는데 생크림 캔에 가스를 쓰면 빨리 쓰고 버려야 하는데 너무 아까워! 앞으로 가스를 쓰지마"
이 말도 안되지만 뭐 어쩌겠는가?
사장님이 시키면 시키는대로 해야지.
그 다음날 사장님은 하얀색 김치통에 생크림을 가득 얼려왔다.
그리고는 와플을 구워서 내고 그 위에 밥주걱으로 꽝꽝 언 생크림을 얹어서 주었다.
황당한 손님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아... 이렇게? 아... 네~" 와 같은 말을 하는 듯 했는데 가끔은 너무 민망해서 사장님이 손님에게 와플을 건낼 때 나는 다른 일을 하곤 했다.
그 이후로는 와플을 팔 때마다 손님들의 불평을 들었던 것 같다.
정말 괴로웠다.
이딴 걸 돈 받고 팔아야 한다니...
손님이 너무 안 와서 이대로 있다가는 짤릴 것 같아 동네 친구들에게 요청을 했다.
어떤 날은 내 친구가 그 날의 매상의 전부를 올려준 적도 있었다.
이 최악의 사장님은 베풀지 않아도 되는 친절을 나에게 베푸셨는데 그것은 중간에 저녁을 챙겨주시는 것이었다.
밥, 김치, 된장찌게를 조금씩 담아다가 주셨는데 딱봐도 비주얼이 손이 안가게 생긴 그런 비주얼이었다.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 먹긴 했으나 3번 중 3번 밥에서 머리카락이 나왔고 그 이후부터는 배가 안고프다고 거짓말을 하거나 와플을 하나 구워 먹는 것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사장님은 시간개념이 별로 없으셨다.
11시에 퇴근이면 10시 50분에 청소를 시키셨다. 어느 때는 11시 20분, 11시 30분씩 일을 더 시키셨다.
한달이 지나고 정산했을 때는 추가로 넘어간 시간에 대한 수당은 전혀 고려되지 않아있었고 그 때부터 나는 출근 하자마자 출근 시간, 퇴근할 때 퇴근 시간을 기록해서 남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수첩에 남겨서 서랍에 넣어놨는데 사장님은 수첩을 없애버렸다.
안되겠다 싶어서 포스트 잇에 기록하고 테이블 안쪽 천장에 붙여놓고 퇴근을 했는데 그 다음날 아침에 아르바이트를 가면 포스트 잇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기록한 것을 집에 가져가서 모으기 시작했고 정산하는 날 사장님께 가져가 따졌다.
그 날 난리가 났다.
절대 주지 않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지 어떻게 아냐고 자신도 기록을 다 해놨다고 달력을 가지고 오겠다고 했다. 달력에는 내가 일한 날에 대한 표시만 되어있고 시간 기록은 없었다.
너무 억울해서 엄마를 대동했는데 사장의 뻔뻔한 태도에 나는 이성을 잃고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고 사장과 싸웠다.
사실 우리 엄마를 대동한 데에는 엄마가 이런 경우에서 싸워서 지는 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는데 엄마는 아무말도 안하고 집으로 나를 데려갔었다.
"엄마, 왜 아무말도 안했어?"
"말이 통하지 않을 여자야. 싸워봤자 우리만 피곤해. 무식한 여자니깐 그냥 똥밟았다 생각해~"
나는 엄마가 대신 싸워주지 않아 속상했고 사장의 머리채라도 잡았어야 하는데 나이가 어린 것이 한이라는 생각에 억울한 맘을 안고 그 주간 일주일 내내 힘들어 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사실 싸움의 원인이 단순히 추가된 업무에 대한 수당을 받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사장이 급여를 차일 피일 미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바로 앞에 파트업무를 맡았던 여자애도 급여를 받지 못해서 한달을 싸우다가 그 여자애의 언니가 와서 가게를 뒤집어 엎었었는데 그 일이 있고나서 나에게도 똑같이 행동했던 것이다.
지금은 그 가게는 망해서 없어졌다. 사장은 이후 돈까스로 업종을 바꿨었지만 또 망했고 그 자리에는 다른 가게가 들어왔다.
10년도 더 된 아주 오래된 이야기지만 아직도 그 사장만 생각하면 부아가 치민다.
어린 애들 돈 가지고 장난치지 말아라. 어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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