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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주는 것들

[아르바이트 후기] 돈으로 키우는 아이

과외

일주일에 1번 유치원생 과외를 했다. 

그 집은 아주 잘 사는 집안이었는데 부모는 맞벌이를 하고 아이를 봐주시는 할머니를 고용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일 때문에 아이와 함께 있어주지 못하는 미안함에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며 과외를 부탁했다. 

1시간 반 정도 책을 읽고 읽은 내용을 바탕으로 활동을 했다. 그림을 그리거나 대화를 주고 받거나 인형놀이를 통해 읽었던 내용들을 되짚어 보도록 했었다. 

 한글을 아직 배우지 못했기 때문에 책에 대한 내용들에 대한 느낌과 생각을 놀이와 같은 방식으로 풀어낼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나와 하는 활동을 매우 좋아했다.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정이들면서 아이는 책을 읽는 활동보다 놀이 활동을 함께 해주기를 바랬다. 

 

집에 있는 장난감들로 함께 놀아줬는데 놀이 내용은 거의 비슷했다.

거의 내가 들고 있는 장난감을 곤경에 빠트리고 괴롭히면서 어쩔때엔 내가 들고 있는 장난감을 던져버리기 까지 했다.

놀이치료사도 아니고 아이들의 행동을 전문가적인 식견으로 읽어낼 수 있는 탁월함도 없지만 놀이 내용의 패턴이 늘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이 아이가 속으로 매우 화가 나있고 불만이 가득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커서 뭐가 되고 싶은 지 물으면 자신은 회사원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아이.

함께 해주지 못하는 바쁜 부모가 미우면서도 자신도 또한 그런 회사원이 되고 싶다 말하는 것이 신기했다. 

그 쪼그만 것이 자기도 결혼 하면 애기를 낳을 것이고 그 애기는 엄마에게 키우게 할 것이라고 했다. 

보고 배운 것이 도둑질이라고...자기도 엄마와 같은 삶을 살고 싶다는 말에 씁쓸했다. 

 

이 동네 아이들의 삶이란 거의 비슷해보였다. 

영어 유치원이 끝나면 다른 예체능 학원에 갔다가 집으로 와서는 과외 선생님을 만나는 식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아이만 너무 적게 시키는 것 같아 불안해 했지만 내가 느끼기에 어린 아이가 소화하기에는 너무 무리인 스케쥴이었다.

나를 좋아할 만했다. 간식을 챙겨주고 각 학원에서 픽업해서 집으로 데려오는 업무 말고는 돌보미 어르신이 따로 아이와 잘 놀아주거나 하지는 못했으니깐. 일주일에 한번이지만 자기가 하자는대로 다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래서 그런지 마쳐야 할 시간이 되면 내 신발을 숨기거나 핸드폰을 숨기고 울고 떼를 쓰곤했다. 

내가 돌아가고 이후 돌보미 어르신이 차려주는 저녁을 먹고 엄마가 올 때까지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스케쥴을 감당하며 외로움과 싸우는 아이가 너무 안쓰러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다른 학원 스케쥴로 인해 더이상 과외를 못할 것 같다는 통보를 받고 그렇게 아이와 갑작스럽게 헤어지게 되었었다.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문자 한통으로 그렇게 끝이 나버렸다. 

 

그 날 알게 되었다. 

엄마는 아이가 걱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하는 그 시간 동안의 불안을

돈으로 해결하고 있었다는 것을.

끝까지 엄마는 엄마만 생각하고 있었다. 

불안을 없애려고 돈을 써서 선생님들을 고용하고 그 불안이 어느정도 잠잠해지면 남들보다 덜 시키는 것 같다는 불안이 찾아오고 그러면 또 다시 돈을 써서 선생님을 고용하고... 

 

아이가 선생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었는지는 전혀 관심도 없이...자신의 판단 위주로 ... 

 

참으로 씁쓸했고... 그저 아이가 잘 자라기를 바랄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