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상이 주는 것들

결혼관계와 상담

1. 결혼관계의 강화와 결혼 위기 상담 & 가족관계의 강화와 상담

 

과거에는 부부싸움을 하다가 도무지 잘잘못이 가려지지 않아 목사님께 전화를 걸어서 목사님이 부부싸움 현장까지 달려가야 했다는 부흥사들의 우스갯소리가 사실일 수도 있었겠지만 요즘 현대의 부부문제는 부부 내에서만 이야기가 되고 누군가의 도움을 받기보다는 그 이전에 이혼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해결을 하려드는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양가부모들을 모시고 사는 경우 부부싸움 안에 집안의 어른이 개입하여 중재하거나 남존여비사상으로 여성이 일방적으로 참고 속앓이를 하며 결혼생활을 유지하였지만 오늘날의 부부는 중재해주거나 압박을 가해서 싸움을 종결시킬만한 존재와 함께 하지 않고 있고 목회자에게도 모든 사적인 생활을 나누려하지 않기 때문에 냉전을 유지하거나 이혼을 하는 경우들이 많아지고 있다. 결혼식은 양가친척 교회 식구들 앞에서 성대하게 공개적으로 올리면서도 결혼생활은 은밀하게 하고 문제가 일어나도 누구에게도 도움을 청하지 못하는 부부들은 어쩌면 자기 자신과 상대방과 결혼이라는 신성한 제도에 대해 배우거나 훈련받지 못하고 링 위에 던져진 불쌍한 사람들이다.

 

부부가 한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경우에는 더욱이 둘 사이 일어나는 갈등에 대해 누군가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럴 때 부교역자들이 담임목회자에게 정보를 주고 담임목회자가 부드럽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가정을 세운다는 마음가짐으로 도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정보를 알리는데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가족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1등만을 강조하는 여자집사는 자신의 자녀에게 압박감을 주고 교회에서의 활동들에 대해서도 자유롭지 못하게 늘 제한한다. 자녀는 자신의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 담당전도사에게 엄마로부터 받은 분노를 털어놓곤 하는데 전도사가 그 강한 성향을 지닌 여자집사에게 아이의 마음을 이야기해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

 

가족 간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는 온전히 그들의 것이고 사역자가 그것들에 개입할 시 자신들이 갖고 있는 그 나름의 철학을 무시하고 교역자가 참견한 것에 대해 불쾌하게 여기기 때문이다. 부부와 가족의 드러내고 싶지 않지만 골이 깊은 상처들과 갈등들에 대해서 신경 쓰지 않으면서 강단에서 사랑을 선포하는 일은 그들의 삶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할 것이다. 목회자 자신이 개인적 상담을 할 자신이 없다면 과감히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장기적 프로그램을 진행하거나 목회자가 직접 배워서 놀이, 심리극과 같은 프로그램들을 통해서 폭발 직전의 가정들의 긴장감을 풀어줄 수 있어야 한다.

 

부부가 겪고 있는 문제를 가슴 깊이 이해하지 못하면서 하는 형식적인 위로와 제안들은 도리어 부부의 마음을 다치게 할 것이다. 내가 아는 한 교역자는 아내로부터 죽음의 위협까지 느끼는 폭력을 당하고 있어서 담임목회자에게 상담을 했지만 모든 것이 합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말을 듣고 와서는 담임목회자에게 마음 문을 닫아버렸다. 담임목사는 그의 고통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 않은 것 같다. 교회 내 얼마나 많은 부부와 가족들이 서로의 문제로 고통 받고 있는지 목회자는 늘 염두하고 신경써야 할 것이다. 교회는 가정의 연합이다. 목회자가 강단에서 외친 설교의 메시지는 성도들의 가슴에 새겨져서 가정에서부터 실현될 때 역사를 일으키는 것이다. 목회자는 잠재적 이혼가정이 교회 내 생각보다 많이 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하면서 교회를 건강히 세울 다양한 프로그램과 계획들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2. 현대 성문화의 허구와 실체

 

요즘 유행하는 노래나 가수들의 옷차림, 춤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다. 십대, 이십대 초반의 젊은 여성들이 전신에 달라붙는 옷이나 속옷과 다름없는 의상들을 입고 골반과 가슴을 노골적으로 보여주고 농염한 몸짓으로 남성들을 유혹하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노래 가사와 춤은 남녀의 성행위를 묘사하는 것들이 유행이 되어 삶의 아름다움이나 사랑 그 자체의 고귀함에 대한 노래들은 접할 수 없는 것이 오늘날의 대중문화이다.

SNS 나 포털 사이트 뉴스 게시판에는 그러한 것들에 대한 비판과 옹호에 대한 의견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다수의 젊은 층들의 의견은 옹호하는 입장이다. 젊은 층들이 하나같이 소리를 모아 이야기하는 내용은 그러한 것들을 그냥 예술로 봐야 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들은 비판하는 입장들을 고리타분한 것으로 치부해버리고 노출과 노골적인 성묘사로 일관하는 춤과 노래가사들은 개방적이고 소위 말하는 쿨한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다. 심지어 젊은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이 그러한 노래와 춤을 따라할 때 그것들을 바르게 지도하지 못하고 박수를 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듯 개방이면 좋다는 그릇된 생각들이 만연해 있다. 동거는 새로운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매춘은 필요악이기에 떳떳한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심각하게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혼전 성관계 문제는 이미 문제라고 이야기하는 것이 이상할 정도로 보편적인 성 문화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무엇을 개방해야 할지 모르겠는 상황이다. 이기주의가 아닌 진정한 개인주의를 갈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러한 것들이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면이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개방들이 우리가 원하는 자유와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행복에 얼마나 큰 도움을 주었는지는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다. 교회도 학교도 TV프로그램도 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와 고찰이 부족하다. 국가는 무기력하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다. 피임약과 매춘에 대한 합법화 논의가 가정파탄과 혼전동거, 사생아와 같은 문제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가?

 

세상이 악하다고 혀만 찰 것이 아니라 교회가 시작해야 한다. 교회 내에서 성문화에 대해 토론해야 한다. 자녀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무엇을 경험하게 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성의 신성성을 말해야 한다. 성매매가 합법화가 된 나라에서 줄지 않고 있는 성범죄율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 성도들 가운데에서도 성매매를 필요악이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목회자는 성도들이 그저 성경의 텍스트에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이것이 어떻게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와 삶에서 드러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의 가치로 어떻게 해석하고 살 것인지 고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필요하다면 적극적으로 전문 강사들과 프로그램을 통해 성에 대한 바른 가치를 심어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건강한 가정이 없이는 건강한 교회도, 나라도 존재할 수 없다. 피임과 동거, 이혼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인 후에 논의되어야 할 문제이지 최선책이 아니다. 피임기구 자체가 새로운 생명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고 성을 오락적인 것으로 즐기기 위해 생겨난 것이라는 것, 동거는 서로에 대한 의무와 책임을 지지 않고 편의에 따라 언제든 깰 수 있는 불안한 결합이라는 사실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절대적이고 엄격한 교리적 잣대가 아니라 그것들이 왜 문제인가에 대해 원인을 찾아가며 해결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할 것이다. 개방이 가져다 준 것은 현대인들이 상상했던 어떤 자유나 개인의 행복이라기보다는 수많은 문제라는 것을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