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우연히 유튜브가 추천해준 영상 하나를 보게 되었다.
[하나뿐인 지구]라는 프로그램에서 올 봄에 방영한 '물건 다이어트'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였다.
요 며칠 발코니에 쌓아둔 안 쓰는 물건들을 정리하다가 엄마와 실랑이를 하며 완전히 지쳐버린 상황이었기에
마치 이 영상이 내 편을 들어주려고 나타난 것처럼 느껴져서 반가웠다.
영상은 집안에 물건을 최소화해서 살아가는 삶들을 보여주고 그들이 물건 다이어트를 하고나서 느끼는 감정, 삶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 물건의 가치는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도록 하고 있었는데 극단적인 예시도 있었으나 깨달을 거리를 주는 좋은 내용이었다.
2. 나는 병적으로 물건을 모아서 이웃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들에 관한 뉴스가 나올 때마다 엄마에게 조짐이 보이니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해왔었다. 그에 대한 엄마의 반응은 콧방귀. 그 뿐이었다.
집안의 물건들을 대충 정리를 해보니 텀블러, 휴대용 물병, 보온병 기타 등등 비슷한 물을 담을 수 있는 용기들 (심지어 플라스틱 음료수 병까지도 모아져 있는 상황이었다.)을 대충 세어보니 30개는 되었던 것 같다.
반찬 그릇들은 진열장을 채우고 가장 큰 사이즈의 다용도 박스를 채웠고 분리수거 대형봉투로 하나가 나왔으나 엄마는 그 어떤 것도 버리지 못하게 했다.
3. 백번 양보해도 이건 진짜 버려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던 물건들이 있어 이야기 해보았지만 도리어 엄마는 다용도 박스를 구입해와서 물건들을 담아 창고에 쌓아버렸다.
엄마의 물건을 모으는 벽 때문에 질려버린 동생과 나는 농담으로 이야기 하곤 했다.
"나중에 먼 훗날 엄마가 돌아가시면 우리는 10톤 트럭을 불러야 할거야"
4. 그러거나 말거나 엄마는 물건을 모은다.
화장대에 화장품은 작고 큰 용기들을 포함해서 족히 100개는 될 것이다. (샘플도 한몫한다.)
어릴 적부터 살았기에 많은 물건들로 찬 집이 익숙했었는데 혼자 몇년을 살아봤더니 사람이 사는데 그렇게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는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5. 엄마는 왜 몇년 동안 쳐박아 둘 요구르트 제조기를 샀을까?
창고에 넣어둔 침구 청소기는 쓰지도 않으면서 내가 달라고 했을 때엔 왜 주지 않았을까?
엄마는 왜 물건에 이렇게 욕심을 많이 부리는 걸까?
수십개의 텀블러가 있지만 선물로 들어온 새 텀블러 박스를 뜯어 헌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6. 이해가 안되고 답답하고 화가나지만 뭐 어쩌겠나? 우리집에서 왕은 엄마기 때문에 물건이 싫으면 내가 나가야 하는 수 밖에 없다. 엄마를 내 힘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기에 가능한 대안은 내가 엄마를 이해하는 것이다.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7. 내가 이해해야 하는 것이 답이지만 나는 이 영상을 무기 삼아 엄마를 설득하고 싶은 욕구에 차있었다.
그러다가 영상에 달린 댓글을 보고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엄마에 대한 '짠'한 감정이 들었다.
" 물건에 대한 집착이 심하면 마음이 가난한 거라던데"
8. 엄마의 이해 못할 행동의 이유에 대한 완벽한 답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쩌면 가장 큰 원인이 가난한 마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찢어지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 학교 대신 공장에 나가 돈을 벌어야 했던 청소년 시절, IMF, 사업실패 기타 등등
말해 뭐하냐는 말만 나오는 엄마의 힘들었던 세월들이 오늘을 살아야 하는 엄마를 계속해서 가난한 과거로 끌어내리고 있던 것은 아닐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물건으로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엄마는 눈에 당장 보이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헛헛한 마음을 안심시키고 있었던 것 같다.
9. 그렇게 생각해보니 몰아 세웠던 내가 너무 했단 생각이 든다.
"니가 엄마의 세월을, 엄마의 마음을 뭘 얼마나 알아. 너도 늙어봐" 스스로에게 질책해본다.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과 함께 어떻게 하면 물건이 아닌 마음으로 마음을 채울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10. 더 늦기 전에 엄마를 마음부자로 만들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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